정동후(東後)
1659∼1735. 자(字)는 후경(厚卿), 호(號)는 송애(松崖). 좌찬성 갑손(甲孫)의 후손으로, 여탁(汝倬)의 아들이다. 45세에 성균의 추천으로 사릉참봉·군자감봉사를 지낸 뒤 1705년(숙종31)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, 사간원정언·사헌부장령, 제주목사, 부호군(副護軍) 등을 거쳐 1725년(영조1) 동부승지가 되었다.
일찍이 박광일(朴光一), 안여해(安汝諧) 등과 교유(交遊)하면서 학문에 전심했고, 특히 성리학(性理學)을 깊이 연구하여 조예(造詣)가 깊었으며, 시폐개혁(時弊改革 :시대의 병폐 개혁을 말함)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 왕에게 상소를 거듭 올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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